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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영원한 여성운동가’

이희호 여사 영면 사진.JPG 


                          여성인권운동가이자 사회적 약자의 대변인
                          민주주의 정착과 한반도 평화위해 평생 “헌신”
                          “하늘나라서 국민, 민족의 평화통일 위해기도” 유언

한평생을 여성인권과 민주평화를 위해 바쳤던 고(故) 이희호 여사가 지난 14일 김대중 전대통령의 곁에서 영면에 들었다. 이 여사가 지난 10일 향년 97세에 숙환으로 별세한지 나흘만이다.

국민적 애도가 이어진 가운데 이 여사가 활동했던 한국YWCA연합회는 13일 저녁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서 추모예배를 갖고 여성운동가로 살면서 평생을 여권 신장에 힘써온 고 이희호 여사를 추모했다.

YWCA연합회는 이날 “여성인권향상과 민주주의를 향한 소용돌이 속에서 탄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인권운동과 소외된 사람들이 겪는 빈곤과 차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한국 여성운동과 사회운동계의 상징이자 기둥이신 고 이희호 여사의 추모예배를 가졌다”고 말했다.

이희호 여사는 대한민국의 여성운동을 이끈 ‘1세대 페미니스트’로 여성차별 철폐와 여성인권 향상을 위한 일관된 삶을 살았다. 대학시절부터 여성지도자 양성과 여성권익 신장에 관심이 많았던 이 여사는, 1950년 서울대사범대를 졸업한 후 한국 전쟁 중에도 당시 여성운동가들과 함께 대한여자청년단(1950년 ), 여성문제연구원(1952년) 등을 창설해 남녀차별 철폐운동을 벌였다.

미국 유학을 마친 이후에는 YWCA연합회 총무를 맡으면서 전국을 무대로 진보적인 여성운동가로 활동했다. 또한 여성지위향상 문제에 큰 관심을 쏟아 김대중 정부에서 대한민국 행정부 최초로 ‘여성부’가 신설되는데 기여했고, 여성재단도 만들어졌으며 남녀차별금지법도 제정됐다.

이 여사는 IMF 외환위기 때 결식아동을 위해 사단법인 사랑의 친구들을 창립해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 등을 위해 봉사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는 김대중대통령과 평양을 방문해 북한 어린이를 돕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뿐만아니라 이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후에도 남북의 평화를 위한 행보를 이어 갔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 사망 당시 조문을 위해 방북했고, 김정일 사망 3주기에는 북측 요청으로 개성공단을 찾았으며, 2015년 8월에는 3박 4일간 평양을 방문하기도했다. 이처럼 여성인권과 민주주의, 남북의 평화를 위해 한결같은 삶을 살았던 이희호 여사는 유언을 통해 “우리 국민들께서 남편 김대중 대통령과 저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며 우리 국민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해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 위해 기도하겠다”는 말과 함께 “동교동 사저를 대통령 사저 기념관(가칭)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노벨평화상 상금은 대통령기념사업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라”고 전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계는 고인을 애도하며 “평생을 여성인권, 민주화, 평화를 위해 힘써 온 이희호 여사의 뜻을 이어 성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유혜민 기자

[2019625일 제1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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