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4월 20일

종합

오늘, 이 땅의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글 싣는 순서>
1. 유아기와 아동기 - 여성으로 태어나기 vs 여성으로 만들어지기√
2. 청소년기와 청년기 - 여성주의의 미래를 엿보다
3. 중년기 - 진화하는 여성

4. 노년기 - 여성이 여성에게


대한민국 여성의
생애주기별 보고서

「가부장제와 자본」, 「힐러리를 위한 암소」 등 여성들의 삶에 관한 날카로운 고민을 담은 글들로 알려진 독일의 사회학자 마리아 미즈는 “여성에게 조국은 없다”라는 글을 쓰면서, 독일통일의 과정에서 ‘조국(fatherland, 아버지의 땅’에서 여성은 무엇을 기대할 수 있나?’를 물었다.

역사의 급변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결국 대가를 치른 자들은 여성이지만 이들이 앞장 선 사회운동과 역사적 열매는 다른 이들을 이롭게 하는 결과로 나타난 것을 지적했다. 즉, 여성들이 다시 한번 가부장제 사회의 전통적 위치로 떨어지고마는 것에 주목한다.

근대의 국가들이 여성들의 출산, 노동 등을 통제하는 가운데 국가적 성장이 이루어지고 나면 이들의 역할은 다시금 가정으로 돌아가도록 또다시 통제의 굴레를 적용하는 것은 국가적 폭력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 마리아 미즈의 주장이다.

이러한 세심한 분석과 비판의 시선이 아니라 하더라도, 오늘의 이 땅,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의 현장에서 부딪히는 ‘세상과 여성이라는 존재간’의 서걱거림, 이해하기 어려운 혹은 받아들이기 힘든 ‘여성이기 때문’이라는많은 이유들, 사회적 금기 사항들의 경계를 뛰어넘기 위한 과도한 노력과 탈진을 목도하게 된다.

왜 우리는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의 땅에서 이토록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오늘, 이 땅의 여성으로 산다 -대한민국 여성의 생애주기별 보고서」 라는 기획 연재는 이러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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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부평구가 전국 최초로 영유아 성평등교육 극단협동조합을 설립, 아이가 어릴적부터 가정이나 보
      육시설 교육기관 등에서 남녀 역할에 대한 성인식이 고착화 되지 않도록 부모와 교육자들의 인식개선
      을 위한 교육공동체를 만들어 선보였다.

여성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생애를 주기별로 세분하면 유아기와 아동기, 청소년기와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로 나눌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유아기와 아동기에 가정과 학교 등 교육의 울타리 안에서 이 시기 사회화 과정을 학습한다.

청소년기와 청년기는 진로 선택의 시기로 고등교육에의 기회가 열려 있으며, 고용 환경으로 진입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중년기는 결혼과 출산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가지는 시기로 육아와 가사를 병행하는 시기이다. 노년의 경우 자녀 양육의 틀을 벗어난 듯하지만, 손자녀의 돌봄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돌봄 노동이 여성들을 기다리고 있는 시기이다.

이처럼 생애주기별로 여성들의 삶을 살펴보는 것은 인생의 단계 단계마다 맞이하게 되는 우리 삶의 불합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에서 연유하는 것들이 많고, 이것들을 과연 수용적으로 바라보기만하는 입장에 머무는 것에 의문은 없는가에서 시작한다.

생애의 어느 지점들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국가가 혹은 사회가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들과 그 불합리에 대처하는 동시대적 방식을 고민하고자 한다. 너무 멀리, 어렵게 나아갈 필요 없이 나 자신이 여성으로 이땅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기억들을 더듬어 가 보기로 한다.

그 과정에 내 삶의 슬픔의 순간들, 억울함의 순간들이 있다면 그 기억들을 꺼내어 안고 회복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시작한다. 여성주의 1세대들에게는 여성이기 때문에 그 우수성과 탁월함이 고려되지 않던 시대를 인내해야 했던 답답함이 있었다.

여성으로 대한민국에서 태어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와 관련해 최근 국민 소설이 된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책을 보면, 어린 시절의 김지영이 소소하게 겪어야 했던 여성으로 받은 억울함이 담담하게 전개된다.

할머니에게는 손주인 주인공의 남동생에 대한 차별적인 사랑을 작가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감히’ 귀한 내 손자 것에 욕심을 내? 하는 느낌 이었다. 남동생과 남동생의 몫은 소중하고 귀해서 아무나 함부로 손대서는 안되고, 김지영씨는 그 ‘아무’보다 못한 존재인 듯했다.....

우산이 두 개면 동생이 하나를 쓰고 김지영 씨와 언니가 하나를 같이 썼고, 이불이 두 개면 동생이 하나를 덮고 김지영씨와 언니가 하나를 같이 덮었고, 간식이 두 개면 동생이 하나를 먹고 김지영 씨와 언니가 나머지 한 개를 나눠 먹었다.

사실 어린 김지영 씨는 동생이 특별대우를 받는다거나 그래서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원래 그랬으니까.” 이 글에서처럼 우리의 어린 시절 언젠가 여자 아이라는 이유로 상대적인 박탈감을 가져야 했거나 존중받지 못한 기억이 일상처럼 자리 잡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차별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제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성으로 태어난 이들은 여성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편견으로 길러져야 했는데 이러한 세상의 틀이 강요하는 가치들은 항상 인내와 양보와 헌신과 같은 일방적인 수고를 감당하기를 요구하는 가치들이었다.

이러한 가치들은 상대적으로 덜 노력해도 여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당연히 쟁취할 권리를 가진 것으로 생각하던 우리 형제들을 성장시키기 위한 동력으로 쓰여졌다. 같은 공간이지만 여성으로 태어난 이들에게는 너무 다른 환경은 그 벽을 허물기 위해 더 많은 수고와 노력을 요구하기에 이르는데 이는 교육의 현장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여자 아이라면 이렇게 해야한다’는 틀은 이전의 환경보다 더욱 확대되어 가고, 유아기를 거쳐 아동기에 이르는 성장의 시간들이 지나가는 동안 마치 처음부터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달랐던 것처럼 인식하기에 이른다.

이 시기 아이들을 양육하는 부모 세대가 저지르는 가장 큰 잘못이 두 성을 바라보는 이중적인 잣대이다. 우리의 무의식이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자신의 지식과 다른 방향에서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를 양육하는 잣대를 적용하는 것을 발견하며 스스로 놀라게 되는 경험을 한다.

얼마나 뿌리 깊게 이중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체질화 되었는지가 부모로서 양육하는 과정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다. 여성적인 역할의 고정성을 완화시켜가는 것으로 현재의 교육은 그 방향성을 지향하고 있지만 그러나 여전히 우리 안의 편견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교육 현장의 이중적인 잣대를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을 양육의 과정에서 자주 확인한다. 양육자인 부모 세대의 의식 전환을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지점이기도 하다. 동시대의 대한민국을 들여다보면 이전 세대와는 많이 달라진 것은 고무적이다.

여자 아이의 탄생을 오히려 기뻐하는사회적 분위기와 교육 현장에서 나타나는 여성 리더십의 모습들은 대한민국에서 여자 아이로 태어난 이들이 마주하는 환경이 확연히 달라진 것으로 보여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인 리더십의 확대를 전반적인 성역할 고정화의 완화의 실질적인 모습으로 읽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즉, 여성 리더십의 확대는 이전의 남아 독점의 리더십 중심이 붕괴된 것이기에 상대적인 임팩트가 크다. 따라서 그 외연의 확대가 성역할 고정성의 완전한 해체와 평등으로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양육과 교육의 실질적인 현장에서 여전히 여자 아이로서의 역할을 분리해 내고, 혹은 여자 아이이기에 같은 정도의 책임을 완수하는 것에 있어 더욱 꼼꼼함과 인내를 기대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아이들을 교육하는 현장에서 동일한 기준에서 각자의 역량을 발휘하며 성취를 이루도록 부모 세대와 사회의 시선의 전환이 지금까지 보다 더욱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김유진 기자

[2019123일 제1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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