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4월 26일

종합

성장과 변화 한계를 수용하되 ‘열정’을 품어야



<글 싣는 순서>
1.여성의 나이듦과 정체성
2.여성의 나이듦에 있어서의 일의 의미의 재설정
3.여성의 나이듦에 따른 관계의 문제-나에 대한 관계 vs 타인과의 관계√
4.여성의 나이듦과 건강한 삶
5.여성의 나이듦과 성취의 문제
6.나이듦을 다시 생각한다.



여성의 나이듦에 따른 관계의 문제 -
나에 대한 관계 vs
타인과의 관계


어릴 적 우리는 엄마도 할머니도 처음부터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느덧 40 · 50을 넘은 중년의 여성인 자신을 문득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마음과 영혼은 젊은 날의 자신에게서 그다지 변하지 않은 채로이지만 육체의 나이는 자신도 모르게 나이듦을 받아들이고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마주하며 당황스러워 한다.


그 충격이 점점 가속화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타인 역시 자신을 중년의 여성 혹은 노년의 여성으로 대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다. 마침내 스스로도 자신의 정체성을 중년의 혹은 노년의 여성으로 받아들이고 결론 내린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비자발적인 낙심의 저편에 남아 있는, 소리한 번 내 보지 못한 젊은날의 그대로인 마음과 영혼이다.


이 멀고 먼거리, 육신의 나이듦을 따라가지 못하는 영혼과 마음의 청.년.애.환. 우리의 나이듦을 세상이 가르쳐 주는 방식으로 방치하게 되면 우리는 쇠퇴와 느려짐, 포기와 상실의 이미지로 나이듦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가 가장 쉽게 속고 있는 인생의 한 장면이다.


우리의 삶은 나이듦과 함께 더욱 풍성해짐을 누리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세상의 소리가 우리에게 강요한 것들을 여과 없이 받아들였기에 알지 못했던 인생의 중요한 비밀이다. 다행히도 고령화 사회의 문제들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는 최근에는 정책 등의 가시적인 분야의 변화 뿐 아니라 고령 인구가 겪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인 자신의 삶을 점검하며 다시 보게 되는 노력들을 도처에서 만나게 되는데 이는 너무나 기다려왔던 시도들이다.


우리의 삶은 그 어느 언저리에서나 그러하지만 특히 나이듦의 문제를 고민하는 노년기에 접어들게 될 때 잠시 멈춤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위한 재정비가 필요하다. 특히 관계의 문제가 가장 우선되어야하며 이는 ‘나 자신’과의 관계와 ‘타인’과의관계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다.


나이듦의 과정에서의 자신과의 관계


파커 J. 파머의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인용된 릴케의 시는 나이듦으로 불이 꺼져가는 듯 여겨지는 영혼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아직 당신은 차갑게 식지 않았습니다.


또한 생명이 자신의 비밀을 조용히 풀어놓기 위하여 깊어가는 당신의 바닥으로 잠기기에도 아직 때는 늦지 않았습니다’ 릴케의 이 시처럼 나이듦이 가져오는 자신과의 대면은 상상 이상으로 큰 위로를 준다. 이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는 시간이 노년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향방 없는 속도전도 이제는 의미 없음이 깨달아지는 나이이기에 의미 있다. 세상의 인정을 받는 직업과 그로 인한 명성도, 그로 인한 성취도, 살고 있는 집의 평수도, 능력있는 배우자의 유무와 자식의 성공도 노년의 어느 시기가 되면 지난 시절 우리가 그토록 애닳아 하며 달려왔던 만큼 큰 의미와 위로가 있는 것들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나이듦의 축복이다. 정말로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분별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제는 오롯이 자신과의 대화가 가능해지며, 많은 경우 젊은 날 기대치에 도달하지 못했던 자신의 인생이었을지언정 그 인생을 위로하며 스스로에게 ‘애썼다’는 진심어린 한마디를 해 줄수 있는 시기인 것이다.


바로 이 때, 나이듦은 우리의 연역함을 안을 수 있는 한없는 수용의 여지를 마련해 준다. 세상의 어떠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괜찮다’는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아니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해야 하도록 굳건해 지는 나이가 노년인 것이다. 우리 각자는 타인은 결코 알지 못하는 험한 파도를 타고 넘었던 그 시간들을 버텨온 스스로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야 한다.


그리고 그런 나의 연약함조차 끌어안은 인생으로 다시 노년의 시기를 살아갈 수 있다. 이 시기에 나의 어떠함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며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견고함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바로 나이듦 때문이다.


윌리엄 새들러의 주장을 빌리자면, 나이듦의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표현을 가로막는 장벽을 허물고, 나이에 관한 고정관념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폐기하며, 나이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동시에 이전 시기 가졌던 자신의 특성들을 노년기 자아상에 통합하는 시도들을 해야 한다.


그러나 계속해서 지속적인 성장을 가져야 하며, 자신의 삶의 부정적인 부분들은 쇄신하고 성공한 인생의 의미를 재정비하며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요컨대, 나이듦의 과정에서는 인생을 평가하는 기준을 완전히 새롭게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효율과 속도, 외관의 화려함이라는 평가의 잣대가 아니라 내 안의 성장과 변화를 받아들이고 한계를 겸허히 수용하되, ‘열정’이라는 이름의 불을 다시한번 지피는 시기가 노년의 때이다.


나이듦의 과정에서 타인과의 관계


청년의 때에 우리는 자신의 삶의 성취를 위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쏟게 된다. 집중력 있는 이 시기는 그러나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미숙함과 균형의 상실로 많은 아픔을 경험하는 시기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가면서 자신에게 중요한 것들의 많은 부분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을 돌보는 것에 서툴렀던 이들도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치유하는 경우를 만나게 되는 시기가 노년의 시기이다. 우리 각자가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세상의 일부분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의 문제를 통하여 우리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노년기의 특성상 타인과의 관계가 더욱 필요한 시기로 관계 안에서의 가치가 회복될 때 비로소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되는 시기이다. 노년기의 여성은 여전히 우리가 발 딛고서 있는 지구의 건재한 일원이며 자신의 목소리를 밖으로 내며 살아야 하는 이들이다.


파커 J. 파머는 타인의 삶과 관여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하여 나와 다른 이들의 다양성은 우리의 삶을 더욱 활기차게 하며, 우리를 더욱 현명하고 창조적이게 해주고, 우리 개개인에게 회복탄력성을 증진할 기회를 부여한다고 했다. 더 나아가 인간 개개인의 다양성의 결과 나타날 수 있는 갈등과 충돌의 현장에서 우리는 예기치 못한 유머러스함을 발견한다고 했다.


 싸르트르의 ‘타인이 지옥’이라는 말은 노년의 시기에 너무나 확연히 비진리가 된다. 애초에 그 말은 진리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타인은, 달리 말해 그 다양성은 서로에게 그렇게 새로운 전환의 계기가되며 인생의 활력을 불어 넣는 생기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인생의 제3의 시기인 노년의 시기에 우리의 관심과 헌신이 자신을 넘어서서 세상을 향하면서 집중력 있게 훈련받은 이전 시기의 많은 재능들을 세상과 나누는 시기가 된다. 이것은 노년이 쇠퇴와 은둔과 정리의 시기가 아니라 더욱 공격적인 쇄신을 통한 외침의 시기로 재편된다는 의미다.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은 이전보다 쇠퇴할지언정 그 인생의 의미에 대한 성숙함과 깊이는 성취라는 속도의 감속을 덮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를 바깥으로 손을 뻗어 세상과 관여하며 살아야 한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며 또 누군가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배려의 조화의 시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혹은 성찰과 실행의 조화이시기라고도 한다. 어떠한 표현이되었던 이제까지의 자신의 인생에 집중했던 태도의 전환이 일어나야 하는 시기이다. 특히 노년의 여성들은 자녀와 부모의 돌봄이 끝난 이후 손자녀와의 관계를 맺는 시기로 접어들면서 자녀를 키울 때와는 또 다른 관계의 기회가 열리는 시기이다.


자녀를 키우면서 겪었던 의도하지 않았던 실수의 시간들은 이 시기 이전의 실수를 발판삼아 노련하며 따뜻한 양상으로 발전되어 나타난다. 이런 시간들을 통해 노년의 여성들은 자신의 삶의 상처와 한계를 경험한 기억으로부터 좀더 자유로워 질 수 있으며, 이는 다시 한번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타인의 관계를 통한 삶의 방식의 재정비, 의미의 재정비, 지난 시간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각자는 자신이 알고 믿어왔던 자신보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겪는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깨닫게 되면서 갈등하는 가운데 성장한다. 이런 경험이 없이 인생이라는 무대의 막이 내려진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부여된 무궁무진한 의미의 실체들을 전혀 알지 못한 채로 끝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새로운 자기 선언


세상이 가르쳐준 방식은 어떤 시기가 되면이제 우리의 모든 역할이 끝나고 사라지는 것이었지만, 이제 고령화 사회라는 새로운 국면의 삶의 환경에 들어선 우리 세대는 이전의 것을 그대로 답습할 수 없음을 선언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재정비와 이를 통한 새로운 인생 기준의 설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아울러 타인과의 관계라는 도상에서의 적극적인 자기 인식과 생의 노하우의 표출과 적용, 소통과 나눔은 놀라운 시너지를 자신과 타인에게 가져올 것이다.


여성의 노년의 때에 우리의 몸은 청년의 때와는 달리 조금은 느려질지언정, 인생의 중요한 지점들과 가치를 한 순간에 읽어내는 통찰의 깊이는 더해가는 시기이며, 나의 어떠함과 성취를 향한 욕심의 방향을 돌려 타인에 대한 사랑과 수용을 시도해 보는 깊이가 더해 가는 가장 아름다운 시기이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의 꽃이 만개하는 시기, 바로 노년의 때이다.


김유진 기자

[2018914일 제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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